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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리즈앤뮐러 26년. 버디 탄생의 숨겨진 이야기.
작성자 CNTD_KR (ip:)
  • 작성일 2018-12-20 0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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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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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이식 자전거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이름. 버디. 조그마한 휠셋을 장착한 이 접이식 자전거는 풀서스펜션 시스템을 갖추어 다른 접이식 자전거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편안한 라이딩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스포티한 주행감으로 접이식 자전거 애호가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구조적인 안정성과 우수한 내구성, 그에 더해 날렵한 디자인까지. 버디는 접이식 자전거의 세계에서 스타의 위상을 누리고 있다.


이 버디를 탄생시킨 장본인은 두명의 엔지니어, 마르쿠스 리즈(Markus Riese)와 헤이코 뮐러(Heiko Müller)이다. 이들은 버디의 개발과 함께, 자신들의 이름을 본따 명명한 회사, 리즈앤뮐러(Riese und Müller)를 설립하고 창립 26년째에 들어섰다. 그리고 26동안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의 자전거를 만들어가기위해 새로운 혁신을 이어가고 있다.





버디의 탄생

90년대 초반 다름슈타트 공과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두명의 학부생은 한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접이식이지만 프레임을 절단하여 경첩으로 잇지 않고, 동시에 풀 서스펜션 시스템을 갖춘 접이식 자전거였다. 그 원리는 프론트와 리어 휠을 안쪽으로 접는 것이었는데, 이는 앞바퀴와 뒷바퀴의 서스펜션 포크의 액슬(Axle)을 폴딩 관절로 이용함으로서 가능했다. 이러한 프레임의 설계는 버디의 무게를 더 가볍게 하는 동시에 프레임을 더 견고하게 만들어 주었다.


 (버디 프레임 지오메트리의 연구를 위한 모형.)


마르쿠스 리즈는 그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고품질의 접이식 자전거라는 완전히 새로운 카테고리를 창조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접이식 자전거에 대한 이미지는 좋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스포티한 주행감을 지닌 접이식 자전거라는 컨셉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었죠."



(버디의 최초 프로토 타입을 시승 중인 헤이코 뮐러.)


"우리는 시장조사 따위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시작했죠." 버디가 독일의 자전거 시장에서 받아들여질지, 버디의 판매로 그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지는 두 공학도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마르쿠스 리즈와 헤이코 뮐러는 오로지 그들의 아이디어를 실체화 시켜 그들이 원하는 자전거, 새로운 형태의 자전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듣찬 순수한 엔지니어였다.



(버디 프로토 타입의 프레임을 용접 중인 마르쿠스 리즈)


두 엔지니어는 자신들의 이름을 딴 회사 리즈앤뮐러를 설립한 후 곧바로 1만 마르크(당시 독일의 통화단위)를 들여 중고 알루미늄 용접 기계를 구입했다. 이후 리즈와 뮐러는 새로 구입한 용접 기계를 이용해, 뮐러의 부모님 집에 딸린 차고에서 그들의 최초의 자전거 - 버디 프로토 타입을 탄생시킨다. 버디의 프로토 타입은 출품되는 박람회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리고 출품 하자마자 곧바로 헤쎄 혁신 어워드(Hessian Innovation Award)에서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버디 최초의 프로토 타입)






버디 프로젝트의 위기와 조지 린(George Lin)과의 운명적 만남.

그러나 버디 프로젝트는 시작하지 얼마 되지 않아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버디 양산에 필요한 생산 기술 개발 투자에 발벗고 나서는 자전거 제조사가 없었던 것. 버디의 프레임은 얇은 두께의 넓직한 알루미늄 튜브를 용접하여 여러개의 베어링과 락 경첩을 조립해야 했는데 이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산 기술과 공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 독일의 자전거 제조 공장들은 아주 생소한 컨셉의 접이식 자전거였던 버디 생산에 투자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버디는 자전거 역사의 한 에피소드로만 남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1994년 타이완 자전거 제조 기업 퍼시픽 사이클(Pacific Cycles)의 회장 조지 린(George Lin)을 만나면서 기회를 잡게 된다. 조지 린 회장은 버디 프로토 타입을 전시해 놓은 이들의 부스를 우연히 지나가게 되고 버디 프로젝트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린은 이미 몇년 전부터 전세계의 다양한 자전거 브랜드를 위해 풀서스펜션 시스템을 갖춘 산악 자전거 생산을 전문적으로 해온 경험이 있었다. 린회장은 버디의 생산을 책임지는 대신 아시아 시장에서 버디의 유통에 관한 라이센스를 취득하게 된다.


(왼쪽부터 헤이코 뮐러, 조지 린, 마르쿠스 리즈.)


마르쿠스 리즈는 박람회가 마치기도 전에 그 길로 곧장 타이완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독일로 돌아오는 비행편을 합해 채 10일이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양산이 가능한 버디의 시제품을 타이완의 엔지니어들과 함께 완성하게 된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된 버디 양산 시제품 개발 후, 새로운 모습의 버디는 독일 쾰른(Cologne)에서 개최될 자전거 박람회의 일정에 맞춰, 마르쿠스 리즈와 함께 독일로 돌아왔다.



 (버디 최초의 양산 시제품)


양산된 버디는 부모님의 차고에서 만든 최초의 버디 프로토 타입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버디는 하나의 완성된 형태의 자전거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리즈앤뮐러는 버디 100대의 첫 주문이라는 오랜 산고 끝에 작지만 의미있는 성공을 맛보게 된다. 이제야 버디의 특별함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이 간편하고 편안하면서도 스포티한 접이식 자전거 - 버디. 작지만 다재다능한 버디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퍼지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새로운 위기

하지만 버디 프로젝트는 또 다시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자전거는 자동차를 살 돈이 없는 사람들이 타고다니는 이동수단이라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었다. 독일의 은행들은 버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큰 주문을 수주 받고 성공 가능성을 입증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가 이런 자전거에 큰 돈을 주고 사겠냐는 반응을 보이며 쉽사리 대출을 승낙하지 않았다.

(버디의 최초 프로토 타입을 들고 있는 마르쿠스 리즈와 헤이코 뮐러.)


성공을 눈 앞에 두고 사업자금 확보의 어려움을 겪으며 버디 프로젝트가 또 다시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이들의 부모님들이 구원 투수로 등판한다. 두 엔지니어의 부모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하여 은행으로 부터 총 10만 마르크라는 거액을 대출 받는다.

뮐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버디 프로젝트는 무조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했어요. 저는 그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버디의 성공에 대한 확신, 그리고 자전거를 향한 무한한 열정에 대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신념이 만들어낸 성공

버디는 실제로 성공했다. 버디의 첫 시리즈 양산 후 자전거 딜러들은 몸싸움을 벌이다시피하며 버디를 앞다투어 주문했다. 리즈앤뮐러는 산업 박람회에 버디를 출품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홍보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버디의 배송과 유통 구조 확립에 전력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버디에 열광한 사람들의 입소문과 언론의 찬사만으로도 홍보가 되기에는 충분했기에 리즈앤뮐러는 아무런 홍보 없이도 날개가 돋힌듯 팔려나갔다.

더불어 버디는 자전거 산업 일대에 센서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세계의 자전거 라이더들은 이전까지 이런 형태의 접이식 자전거를 본 일이 없었다. 편안하면서도 스포티하고, 접이가 간편하면서 또한 프레임까지 견고한 프리미엄 접이식 자전거 - 버디. 6만대가 판매된 최초의 버디 시리즈는 지금까지도 클래식으로서 전세계 버디 팬들의 숭배 대상이 되고 있다.


결코 순탄치 않았던 리즈앤뮐러의 성공. 사실 리즈앤뮐러는 몇번씩이나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지만, 그들이 매번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이 개발한 최고 품질의 자전거를 사람들이 즐겁게 타고 다니는 경험을 누리게 하고 싶다는 멈출 수 없는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열정은 지금도 계속되며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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